가는 사람
맥주를 마셨다. 회사 들어와 두 번째로 한 회식. 서운할만치 회식이 없는 이 곳은 특별한 일이 있어야만 저녁회식을 한다.
2년여 같이 일했던 노무사님이 퇴사하신다. 속사정이야 다 알 수 없지만 여러 생각을 했으리라. 그 사정 중 하나가 임금 때문이라는 걸 아는 나로서는 쉽게 잡을 수도 없다. 결혼하기 전 매일 아침 1,5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사들고 왔던 그는 결혼하고 나서는 커피도 끊었더랬다.
길지 않은 직장생활이지만 본 중 가장 일을 잘 하고, 똑똑했다. 물론 이 느낌은 아마 몇 년을 더 일 하더라도 변하지 않을 테다. 유능한데, 배려심도 깊다. 첫 몇 개월은 진정성을 의심했을 만큼이었으니 말 다했다.
강의를 하면서는 상담했던 사례를 말하다 시간 조절을 못했다던 사람이었는데, 마지막 강의 역시 불합리한 상담사례를 말하면서 열을 내다 시간을 초과했다 했다. 천직이 아닐 수 없는데 사회는 그런 그를 왜 쫓아내는 걸까?
인생의 회의가 극에 달았을 때 이직하게 된 이 여기서 그는 내 마음치료사였다. 경계심에 가득 차 경쟁상대로 대했던 나를 따뜻하게 보듬어주었다. 회식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, 나를 답답해했던 팀장님을 그렇게나 다그쳤다고 한다. 그러면 안 된다고... 그러는 사이 나는 예전의 나, 초등학교 시절의 당찬 나로 다시 돌아가게 됐다. 아, 내 성격이 이랬었지.
작년 이맘땐가 같이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노무사님을 형이라 불렀던 적이 있다. 항상 노무사님을 형이라 생각해왔고 그게 입 밖으로 나와버린 건데, 한편으로는 이젠 진짜 형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좋기도 하다. 아니.. 계속 같이 일했으면 좋겠다.
이상하게 담담하다. 나도 그렇고, 노무사님도 그렇고, 팀도 그렇고, 회사도 그렇다. 원래 이렇게 담담한 분위기가 맞는 건가? 마지막에 울어버릴까 싶으니 그냥 담담해야겠다.
첫 면접날 빨강 반팔을 입고 있어 공익요원인지 알았었는데...... 그 기억처럼 반전에 반전만 거듭하고 떠나는 형이 다른 곳에서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.